완드 오브 포츈 Wand of Fortune R2~시공에 가라앉는 묵시록~ 스텔라워스 특전 소책자 알바로 가레이편 번역
!) 주인공 이름은 디폴트입니다.
Alvaro Garay : 암막(1/1)
"……그래서? 약속 장소가 바뀐건 그렇다쳐도, 아무리봐도 벌당번으로밖에 안보이는 그 차림새는 뭐야?"
"오, 오랜만에 마법을 실수해서……."
커다란 빗자루를 안고 삼각두건에 앞치마를 두른 루루는 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발 디딜 틈도 없는 마법 실험실을 바라보고, 사태를 일으켰을 장본인을 흘겨보고 한숨을 쉬었다.
"요즘은 줄었다고해도, 네가 일 치는건 율리우스군의 폭주랑 같은 빈도로 익숙하니까 넘어갈게. 그러니까――왜 나를 불렀는지 알고 싶은데?"
턱을 손으로 잡아 얼굴을 들어올리게하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러자 루루는 실없이 웃어보이며 말했다.
"청소 도와주지 않을까해서!"
"……갈래."
"잠, 잠깐 기다려! 그치만 혼자선 이런거 언제 끝날지 안 보이는 걸!"
"그거 알아, 루루? 벌이라는건 나쁜 짓을 한 본인이 받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거야."
"그건 괜찮아! 바니아 선생님께서 알바로한테 도와달라하라고 하셨으니까."
"…………"
이런 경우 난 어느 쪽에 항의해야하는거지? 태연하게 말하는 루루인가. 아니면 무턱대고 밀어붙인 그 마녀인가.
"그러니까, ……응?"
응, 이 아니야. 이 상황에서 애교부려도 열받을 뿐이다. 나는 곧바로 루루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고는 웃으며 말했다.
"됐으니까 스스로 해!"
잠시동안 보채던 루루는 내가 진심으로 도울 생각이 없다고 이해한 뒤로는, 얌전히 혼자서 청소를 시작했다.
"라라라~ 알바로는~차가워~. 봐~ 내가 이렇게 열심히하는데~ 보고있을 뿐~"
"……루루, 본인이 음치인거 자각하는게 좋아."
"그렇지 않아. 아버지는 항상 천사의 목소리라고 칭찬해주셨는 걸……"
"딸바보의 전형이잖아. 자, 됐으니까 손 움직여."
"으으……, 저기, 알바로――"
"난 여기서 응원이나 할게. 힘내, 루루."
원망스러운 시선을 방치라고 가볍게 손을 흔들어줬다.
(사귀어주는 것만으로 감사해줬으면 좋겠는데.)
애초에 오늘은 방과후 데이트가 하고 싶다는 루루의 제안으로 굳이 따로 호수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솔직히 뭐가 하고 싶은건지 잘 모르겠는 제안이었지만 별다른 예정도 없었으니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이 꼴이다.
"……저기, 루루. 심심한데."
"그럼 도와줘!"
"기각. 나 포크보다 무거운거 못 들어."
"거짓말만 하고! 알바로 나빠!"
불퉁거리면서도, 말을 걸어주면 그럭저럭 기분이 풀리는건지 루루의 손은 부지런히 쓰레기를 정리해나간다. 바닥에 흩뿌려진 유리파편. 쓰러진 기재. 널려있는 약제의 흔적. 그것들을 그저 청소하고 있는 나의 연인.
……그래, 연인.
(좋아하니까 같이 있는다. 그것만으로 기쁘다, 라――)
과거의 세계에서 돌아온 후 루루가 전해온 말이다.
목적을 잃고, 이 학교를 떠나려고 한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 날부터 나는, 루루의 곁에 있는 것만을 위해 여기에 남았다. 약속도 뭣도 아니고, 여기에 있을게, 라고 스스로 말한 것이다.
(차라리 약속이라면 간단히 깰 수 있었을텐데.)
루루가 알면서 나에게 결정하게 한 건지, 단순히 내 입으로 말하는 것이 듣고 싶었던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저기, 저기, 알바로! 좀 들어봐!"
정신을 차리니 루루에게 불리고 있었다. 창가에 서서 찢어진 커튼을 등지고 나에게 손짓하고 있다.
"왜?"
"이 커튼 좀 떼어줬으면 해. 난 안 닿아서."
"으음……."
"부탁이야! 덤으로 새 커튼도 달아줘."
이건 분명 키가 작은 루루에게는 무리일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어깨를 움추리고는 루루가 기다리는 창가에 걸어갔다.
"비쌀거야."
"애인 가격으로 부탁해!"
"그게 제일 비싸다고 몇 번이나 경험해도 못 알아듣지, 너는."
그게 무슨 뜻이야, 하고 떠드는 루루를 무시하고 빠르게 커튼을 떼어갔다. 차광성이 높은 그것은 묵직해서 내 손에도 꽤 부담이 있었다.
"와, 역시 커튼이 없으면 밝네!"
딱 좋으니 환기도 시키자. 루루는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새 커튼은?"
"이따가! 봐, 바람도 상쾌하잖아?"
"상관은 없지만……. 이 방 일부러 어둡게 해놓은 이유가 있으니 적당히 해."
실험에 사용하는 약제 중에는 빛에 변질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루루도 그건 알고 있는건지 별 말 없이 끄덕였다.
밀실 안에서 움직인 탓인지 루루의 이마에는 살짝 땀이 서려있었다. 창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받으며 손을 부태삼아 흔드는 모습은 의미모를 충실감에 차있었다.
"정말 알바로가 와줘서 다행이야! 나 혼자선 이 커튼은 어떻게 못 했을거야."
"아 그래. 난 왜 왔는지 후회중이야."
"또 그런 말하고. 괜찮잖아, 이것도 훌륭한 방과후 데이트야!"
"있지……. 루루가 말하는 데이트의 정의란 뭐야?"
"그런건 정해져있어.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거지!"
자신 만만하게 가슴을 펴고 말하는 루루에게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 우린 매일 데이트하고 있는거야?"
"그럴지도."
그러면 재밌어?라고 물어보려다 그냥 입을 다물었다. 반대로 되물어왔을 때 대답을 주저하는 건 분명 내 쪽이다.
"……그럼, 환기도 충분히 됐겠지. 커튼 달 테니까 창문 좀 닫아줄래?"
"네-"
새로운 커튼을 레일에 끼워나가니 빛은 눈 깜빡할 사이에 가로막혀 침침한 실내가 돌아왔다.
이렇게 어두웠었나? 루루가 얼굴을 살짝 찌푸렸지만 나에게는 이 밝기가 더 안정된다.
"어두움에 눈을 적응시키고 싶으면 눈을 감아봐. 그 사이에 키스해줄테니까."
"아직 정리도 안 끝났으니 그건 나중에!"
그렇게 말한 루루는 눈을 깜빡이며 청소를 재개했다. 이런 농담을 가볍게 넘길 만큼은 나를 다루는데에 익숙해졌다는 거겠지. 그리고 나도 일일히 말을 더 얹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제 서로에게 잘 맞는 거리를 발견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다. 편하다. 하지만――어쩐지 진정이 안된다.
눈부신 날의 빛처럼 밝은 루루의 미소는, 분명 조금씩 내 안을 변질시키려 하고 있었다. 그걸 기분 좋게 느끼는 한편, 구역질이 날 정도로 혐오하고 있다.
좋아하니까, 같이 있는다. 단지 그것 뿐.
마음만으로 연결된 애매한 관계는 대체 어디까지 지속되는건가. 정말로, 지속되는건가. 나는 그걸 바라고 있는건가.
(이런걸 생각하는 시점에서 눈에 보이네.)
아마 곧 나는 이 마을을 떠나겠지.
언제나처럼 불러오는 루루의 권유에 등을 돌리고 무엇하나 남기지 않은 채, 그 녀석의 앞에서 사라진다.
그 뒤 어떻게할지는 모르겠다. 분명 지금까지처럼 적당히 지내겠지. 내킨다면 일을 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언젠가 루루를 떠올릴 때, 그 때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알고 싶다.
계약에도 약속에도 묶이지 않은 자유의 몸. 그래도 나는 또다시 루루의 곁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할지 아닐지.
"저기 알바로 부탁해! 역시 도와줘!"
"……진짜로 비쌀거야."
어두컴컴한 교실 안, 너를 향한 미소 뒤에서 너를 배신하는 날의 꿈을 꾸고 있는 나.
"미리 말해둘게, 루루."
"응?"
"――미안해."
차오르는 웃음을 숨기듯이 마음없는 키스를 했다. 너라는 빛에서 도망치는 나를 절대 용서하지 마.
가두어둔 의도는 달콤한 숨에 녹아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