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노비 코이우츠츠 -설월화 사랑두루마리-(PSV) 스텔라워스 한정세트에 동봉된 소책자 단편 번역.
주인공 이름은 디폴트입니다.
키리가쿠레 타다히토 : 섣달의 귀로(1/1)
차가운 바람이 은행나무 사이를 달려지나갔다. 황금색으로 물든 나뭇잎은 진작에 지고, 지금은 썰렁한 가지가 드러나고 있었다.
추위탓인지 거리에 사람도 많지 않아 항상 활기넘치던 상점가는 오늘따라 생기가 없어보였다.
(금새 겨울이 되었네……)
어전 시합 형식의 기말시험이 무사히 끝나고, 수련원의 종업식을 맞이할 즈음엔 이미 계절은 겨울. 눈이 내릴 정도는 아니지만 꽤 추워지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서야 서랍에서 외투를 꺼내온 카타기리 카에데는 살짝 몸을 떨며 옆을 걷는 인물을 봤다.
"――선배 왜 그래? 추워?"
밝은 얼굴로 물어본 사람은 한 학년 밑의 키리가쿠레 타다히토.
"아니 괜찮아. 타다히토군이야말로 춥지 않아?"
"난 끄떡없어. 형이랑 같아서 추위에는 강하거든. 선배 혹시 추우면 내 외투 빌려줄테니까 언제든 말해."
"후후 고마워. 타다히토군은 상냥하네."
카에데가 미소짓자 타다히토가 "당연하지"라고 자랑하는 듯이 어깨를 폈다.
"그야 난 선배의 짝이자 사랑하는 사이니까!"
"타, 타다히토군――!"
(사랑하는 사이라니, 갑자기 그런 말 들으면 부끄러워.)
길거리에서 당당하게 공언하는 타다히토에게 카에데는 다급하게 목소리를 높여버렸다. 그러나 타다히토는 그런 카에데를 보며 "하지만 그렇잖아?"라고 되물어왔다.
"아니면 선배는 나, 벌써 싫어하게 된거야?"
타다히토는 카에데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온다.
(그런 식으로 묻는건 치사해……)
질문을 받았으니, 카에데도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부끄럽고 쑥쓰러운데)
볼이 붉어지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심으로 창피했다.
타다히토를 바라보며 말한다니 부끄러움에 할 수 없어서, 조금 눈을 돌리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답했다.
"그건, 그, 당연히 나도……좋아,하는데……"
카에데는 웅얼웅얼거리며 거의 들리지 않을법한 목소리로 쥐어짜냈다.
(지나가는 사람이 들어버리면 창피해서 못 버틸거야!!)
얼굴을 가리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는데――.
"다행이다-! 있잖아, 나도 선배 엄-청 좋아해!"
"뭐――!"
큰 소리로 하는 말에 카에데의 얼굴이 한층 더 붉어졌다.
(이런거 다들 들으면 어떡해?! 아니, 타다히토군은 신경안쓰겠지만……!)
당황하는 카에데를 보고 타다히토가 작게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하고 카에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선배, 수줍어하는거야?"
"그, 그야 당연하지. 사람들 앞에서……"
"에헤헤, 선배 귀엽네!"
"!!"
활짝 웃은 얼굴을 보이자, 카에데는 말을 삼켰다. 천진난만한 타다히토는 항상 이렇다.
(이렇게 웃고있으면 아무말도 못하겠잖아……!)
기분이 좋아진 타다히토는 춤추는 듯한 걸음으로 카에데의 옆을 걷다가, 그러고보니,하고 뒤돌아봤다.
"선배랑 둘이서만 돌아가는거,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네."
"그렇네. 나는 기숙사고, 타다히토군이랑 키리가쿠레군의 집에 갈 때는 키리가쿠레군도 같이 갈 때가 많고. 키리가쿠레군은 오늘 일있어?"
"음, 진로지도래. 형, 졸업을 앞당겨서 사나다용사대에 들어갈 생각인 것 같아."
"그래? 전혀 모르고 있었어. 굉장하네……!"
(아직 2학년인데 조기졸업해서 용사대에 들어갈 수 있다니, 역시 키리가쿠레군!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 납득돼.)
카에데가 감탄의 목소리를 내자 타다히토가 "응……"하고 어두운 표정을 했다.
(응?)
타다히토의 걸음이 갑자기 느려졌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즐거운 듯이 걷고 있었는데, 지금은 축 쳐져버렸다.
"타다히토군, 왜 그래?"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
"……쓸쓸해, 져서."
"!"
연약한 목소리에 카에데는 다리를 멈췄다. 동시에 멈춰선 타다히토가 봇물 터지듯 불안을 내뱉기 시작했다.
"용사대에 들어가는건, 성을 섬기게 되는거니 지금처럼 나가야에서 나랑 살지도 못하게 되고. 조금 더 성과 가까운 곳에서 용사대 사람들이랑 숙소에서 살게된다고 했어."
"어, 그럼 타다히토군은 혼자 살게 되는거야?"
카에데의 질문에 타다히토는 고개를 저었다.
"수련원 기숙사에 들어가면 된대. 기숙사라면 선생님도 애들도 있고 안심되니까. ……형은 용사대에 들어가면 내 수련원 기숙사비도 낼 수 있으니까 안심하라고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야. 애초에 용사대에 들어가는게 형의 목표였으니까 이런 말 하면 안되는건 알지만, 그래도――"
타다히토가 중얼거렸다.
"갑자기 사라지는 건 쓸쓸해."
"타다히토군――"
허전한 듯이 시선을 내린 타다히토에게, 카에데는 뭐라고 해야할지 말을 고르지 못했다.
(그야 외로운게 당연해. 계속 형제 둘이서 힘을 합쳐 살아왔으니까. 특히 타다히토에게 키리가쿠레군은 부모대신이기도 했으니까――……)
카에데의 마음에, 십년 전 양친을 잃은 아픔이 되살아난다.
(……갑자기 사라지는건, 분명 쓸쓸할거야.)
같이 지낸 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다히토군이 동요하는 것도 당연해. 하지만 키리가쿠레군에게 필요한 일이고――)
"――――선배."
"!"
꽉, 카에데의 손목이 붙잡혔다.
놀라서 시선을 돌리자 타다히토가 애달픈 얼굴로 카에데를 보고 있었다.
"선배는, 갑자기 없어지거나 하지 않을거지? 나랑 같이 있어줄거지?"
"타다히토군? 왜, 갑자기."
"그게…… 저번 어전시합 때, 선배도 용사대에 들어갈 허가를 받았잖아? 그러니까, 선배도 형같이 수련원을 졸업하면 용사대에 들어가는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타다히토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타다히토의 불안함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듯해서.
"나, 선배랑 더 같이 지내고 싶어. 모처럼 선배랑 연인이 되었는데――……!"
"타다히토군……"
불안에 흔들리는 눈동자가 카에데를 바라보자, 카에데는 살짝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괜찮아. 나는 아직 수련원에 남을거야."
"진짜?!"
카에데의 말에 타다히토가 힘껏 얼굴을 들었다. "응"하고, 카에데는 미소지었다.
(조금이라도 타다히토의 불안을 없애고싶어. 지금은 키리가쿠레군이 없어지는게 외로울테니까, 더더욱)
"확실히 어전시합에서 용사대 입대허가는 받았지만, 나는 아직 닌자로서의 실력이 부족한걸. 더 수련원에서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그럼, 앞으로 1년은 같이 있을 수 있는거지?"
타다히토가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했다.
"응. 학년은 다르지만, 같은 수련원의 학생이야."
"그럼――"
그 말과 동시에 타다히토가 카에데에게 다가왔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선배, 눈, 감아줘."
"뭐어?"
"됐으니까. 응?"
(타다히토군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어쩐지 가슴이 두근두근거려서 카에데는 시선을 굴렸다. 그러자 타다히토가 "사람은 없으니까, 안심해. 자 빨리!"하며 카에데를 재촉한다.
(사, 사람이 있으면 안심 안되는 걸 하려는거야? 설마, 하지만.)
불안과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카에데에게 타다히토가 천천히 호소했다.
"선배, 응? 부탁이야."
"――!"
어리광부리는 목소리, 올려다보는 눈빛, 흑심 같은건 전혀 없다는 순수한 표정에 눌려.
(안돼, 거절못해……!)
타다히토에게 밀어붙여진 것처럼 카에데는 꽉 눈을 감았다. 후,하고 타다히토가 안심한 듯한 기척이 났다.
(타다히토군은 뭘 하려는거야? 왜――)
암흑속에서 감각이 예민해진 카에데의 손가락에 무언가가 얽혔다.
(……응?)
따뜻하고, 조금 딱딱한 굳은 살의 감촉.
(타다히토군의 손가락?)
순간 눈을 뜬 카에데의 눈 앞에 아까까지의 카에데와 똑같이 눈을 감은 타다히토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 거짓말하면 바늘 천개 먹인다, 약속했다!"
(손가락걸기?!)
엮인 손가락이 노래가 끝남과 함께 떨어졌다.
"타, 타다히토군, 저기."
"선배가 나한테서 멋대로 멀어지지 않게, 라는 약속!"
싱글싱글, 순진한 미소로 타다히토가 말했다.
"뭐야, 눈 감으라는건 손가락 걸기를 하려는거였어?!"
어쩐지 맥이 빠져서 카에데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타다히토는 그런 카에데를 보고 도전적인 웃음을 보였다.
"……선배."
달달한 목소리로 부르며 카에데와 거리를 좁혔다. 숨이 느껴질 정도의 가까운 곳에서,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눈빛을 띠고는.
"――――혹시, 입맞춤이라도 기대했어?"
"뭐……!!"
"흐음, 선배 귀여워."
쪽.
귀여운 소리가 카에데의 귓가에 닿았따. 동시에 부드러운 감촉도.
(잠――――!!)
한 순간에 얼굴이 붉어진 카에데의 틈을 타, 타다히토가 카에데의 볼에 입을 맞춘 것이다.
"타타타, 타다히토군?!"
(이런 길거리에서?! 이렇게 갑자기?!)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타다히토가 술래잡기를 하듯 달려나갔다.
"선배가 귀여웠으니까. 미안해~"
"자, 잠깐 기다려, 타다히토군!"
(역시 나, 아직 수련이 필요해――――!)
웃으며 도망가는 연하 애인을 쫓기 위해, 카에데는 얼굴을 상기시킨 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