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온 드라군 1.3 A_0010 진홍의 용 번역 (2/3)

Translation
2021.03.09
반응형

서번트 오브 스론즈 콜라보 이미지

드래그 온 드라군3 설정집에 있는 드래그 온 드라군1.3 소설 번역입니다.

시간열은 DOD3의 A분기 > YOUNG GANGAN에 연재된 만화 '드래그 온 드라군 죽음에 이르는 적색'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무인판 드래그 온 드라군과는 설정이 조금 다릅니다.

◆1편 ◆3편

 

A_0010 진홍의 용(2/3)

바람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되었다. 뒤에서 걷고 있던 병사의 목소리도 결국 끊겼다. 아무리 소리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엄선한 병사들이라고 벨드레는 말했지만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은 빠르게 탈락하고, 오히려 지원하여 따라온 자들이 더 늦게까지 남았다. 기사의 호칭따위 이 설산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약 2300m 정도를 올랐을 때부터 뒤처지는 병사가 하나 둘 속출하더니 심지어 날씨도 악화되어갔다.

카임은 뒤처지는 자, 쓰러지는 자는 그 자리에 버려두도록 명령했다. 누군가를 도우려한다면 손을 뻗는 사람조차 같이 쓰러질 것이다. 이 곳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무른 장소가 아니었다.

그렇게 적지 않은 희생을 치르고 나아간 결과가 이것이었다. 단 한 명의 아군도 없이 그 검은 용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그것보다 과연 용의 둥지까지 살아서 도달할 수 있을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와 그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명이 들린다. 그렇게 시끄럽던 바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새하얗던 시야에 아른아른 별이 반짝이고 있다. 밤도 아닌데. 묘했다. 의식이 어딘가에 끌려간다.

이런.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위험한 징조다.

무턱대고 팔다리를 움직였다. 감각이 전혀 없다. 손끝의 감각은 이미 훨씬 전에 잃었는데, 그게 사지 전체에 퍼져있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건 아니다. 아직 움직일 수 있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어떻게든 해야했다.

초조함에 몰려 있는 힘껏 걸음을 밟았을 때였다.

굉음이 들렸다. 충격이 왔다. 반응을 거의 잃었던 감각이 부셔졌다. 모든것이 공포로 바뀌었다. 눈사태에 말려들었다는 걸 한순간에 깨달았다.

 

죽음. 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죽고 싶지 않아.

그저 발버둥쳤다. 무슨 짓을 해서든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했다.

죽고 싶지 않아…….

 

갑자기 몸이 가벼워졌다. 공중에 뜬 몸은 다시 덮쳐졌다. 숨을 쉴수가 없어서 필사적으로 눈 앞의 눈을 갈랐다. 물에 빠진 것만 같다고 머리 한 구석에서 생각한다. 숨이 막혀 정신이 멍해졌다. 이명이 들린다. 그래도 눈을 긁어대며 땅을 기어올랐다.

정신이 드니 몸 밑에는 흙 있었다. 눈이 아니다. 흙냄새가 난다. 일어나려해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지칠대로 지친데다 안심한거겠지. 조금이라도 안전한 장소에 도착한거니까.

지면에 묶여있는 듯한 몸을 떨어뜨린다. 상체를 일으키자 눈 앞에 바위로 된 벽이 있었다. 조금 어두웠지만 여기가 동굴이라는 걸 알 정도의 빛은 있었다. 지금이 밤이 아니라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밝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입구가 있었다. 그러나 무너진 눈으로 거의 차있었다. 여유를 부리다가는 완전히 막혀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임은 동굴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어둑어둑한 안 쪽에서 무언가 기척을 느낀 것이다.

 

"……인간인가?"

 

역시. 말의 의미 자체는 카임에게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사람의 것이 아닌 울림이 있었다.

벽에 손을 짚어 비틀거리는 몸을 지탱하고 섰다. 벽에 닿아있을 손바닥에는 전혀 감촉이라는 것이 없었다. 땅을 밟고 선 다리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약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걸을 수는 있었다.

 

"나가라."

 

그 목소리를 거역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예상이 간다. 인간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하면서도 유창하게 인간의 말을 하는 높은 지능을 가진, 신의 사자라고도 불리는 지고의 생물.

 

"드래곤……."

 

어둠속에서 떠오른 윤곽은 거대했다. 그것을 가만히 응시한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확연하게 비친 선명한 진홍. 실망과 안도감이 동시에 퍼졌다. 찾고 있던 상대가 아니라는 실망과, 다리조차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상대에서 부모님의 원수와 대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감.

사실 몸의 색을 확인하지 않아도 눈 앞에 있는 것이 5년전의 검은 용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용이었다면 동굴에 발을 들인 순간 눈치챘을 것이다. 주체할 수 없이 폭력적이고 불길한 그 기척을.

무엇보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 인간을 공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5년 전, 검은 용은 마치 육식동물이 먹이를 가지고 놀 듯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였었다.

용은 가족을 지키려 맞선 아버지의 양 팔을 한 순간에 잘라냈다. 그 다음 머리를 물어 뜯었다.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를 잡아 날아올라 휘두르다 결국 으스러뜨렸다.

 

아무것도 못한 채 서있는 카임의 눈 앞에 어머니의 팔이, 다리가, 형태를 잃어버린 장기가, 그리고 머리가 미적지근한 혈우에 섞여 쏟아져내렸다.

 

"뭘 하고 있지? 조속히 떠나라."

 

어쩐지 조금 전보다 짜증이 난 듯한 울림이었다. 그러나 공격하려는 기척은 없다.

사람이 제각각인 것처럼 용족도 개체에 따라 여러가지인가보다. 눈 앞에 있는 붉은 용은 확실히 검은 용과는 달랐다. 위압적이기는 하지만 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따위 굳이 상대하지 않는다는건가.

 

"할 이야기가 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갔다. 혐오해야할 용족을 눈 앞에 두고 냉정하게 있을 수 있을지 불안했지만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마음 속은 고요했다.

몸의 색에 관계없이, 용족 자체를 원망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화 같은 걸 할 수 있을리 없다고 생각했다. 벨드레의 약속따위 종잇장처럼 가볍게 어겼었다.

만일 그 검은 용이 아니었더라도 용은 용. 죽인다는 마음에는 조금의 주저도 없었다.

그러나 생각이 바뀌었다.

 

"들어줘."

"알 바 아니다. 떠나라."

 

이걸로 대화는 끝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진홍의 용은 눈을 감았다.

 

"힘을 빌려줬으면 한다."

 

일부러 '동맹'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이 설산에서 나 이외의 인간은 모두 죽었다. '엄선한 기사'들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전장에서 살아남았던 굳센 병사들조차. 눈 앞에 있는 용은 그 설산에 거주하고 있다.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힘이 무엇인지 이토록 명쾌한 대답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동맹을 제안하더라도 한 번에 거절당할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같은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같이 싸우고 싶었다. 이 강력한 힘으로 제국군을 유린하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이 떨릴 만큼 환희에 찼다.

지금은 벨드레의 의뢰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압도적인 힘에 넘어가버렸다. 이 힘이 갖고 싶다. 그게 부모님을 참살한 용족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같이 싸워줘. 제국군을 무찌르기 위해."

 

용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듣고 있는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카임은 말을 이었다. 세계를 두 개로 나눈 전쟁, 단기간에 세력을 확대한 제국군, 연합군이 천천히 몰리고 있는 것…….

말을 끝낸 후에도 침묵이 이어졌다. 용은 그 양 눈을 감은 채였다. 잠들어버린건가? 카임이 초조함에 입을 다시 열려 한 때였다.

 

"인간따위에게 힘을 빌려준다니."

 

용이 중얼거리듯 내뱉었다. 눈꺼풀이 살짝 들어올려졌다. 그러나 그 눈동자에 카임의 모습은 전혀 비치지 않는 것 같았다.

 

"전쟁? 굳이 서로 죽이지 않아도 인간은 금방 죽는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이어진 그 목소리에는 확실히 비웃음이 섞여있었다.

 

"우리에게 무리를 짓는 습성은 없다. 같이 싸운다는 건 말 할 것도 없지."

 

눈꺼풀이 다시 내려앉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하는 듯한 그 몸짓이, 굉장히 신경을 거슬렀다.

 

"전쟁이 쓸데없는 짓? 용족은 무리를 짓지 않는다? 그게 어쨌다는거지!"

 

살아있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는 이 산을 그저 오르고 또 올랐다. 용과 마주할 수 있다는 목적만으로는 너무나도 힘든 길이었다. 그에 어울리는 대가를 원하는게 뭐가 나쁘다는거지?

 

"그렇다면 죽인다!"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단지 힘에 혹해 마음이 바뀐 것 뿐이었다. 그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처음의 목적을 이루면 되는 것이다.

검에 손을 대려던 그 때였다. 충격음과 함께 동굴이 흔들렸다고 생각했다.

시야가 뒤집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도 모르는 채 카임은 신음했다. 등부터 벽에 내던져졌다고 눈치챌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갑작스럽게 새하얀 바람이 몰려왔다. 왜 다시 눈보라 속에 내던져진거지?

포효를 들었다. 진홍의 용의 것이 아니었다. 눈보라속이라 색까지는 확실히 보이지 않지만 다른 용이다.

동굴밖에 내던져진 것이 아니라 동굴자체가 파괴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정체모를 용이 입구를 바시며 난입한 것이다.

 

정체불명의 용은 날개를 크게 펼쳤다. 눈에 힘을 주고 자세히 살펴보니 회색도 갈색도 아닌, 어쩐지 더러운 색의 용이었다. 그 용은 진홍의 용을 공격했다. 발톱이 빛을 발한 순간 붉은 눈이 흩날렸다.

피를 뒤집어 쓴 용이 더더욱 날카롭게 울었다. 그런데도 진홍의 용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저 "광룡인가……?"하고 낮게 중얼거리고만 끝났다.

카임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뭐하는거야!"

 

왜 싸우려고 하지 않지? 자신이 위험에 처해있는데도 반격조차 하지 않다니.

 

"죽고 싶은건가!"

 

검이 소리를 내며 땅을 굴렀다. 무의식중에 뽑은 거겠지. 그러나 검푸르게 부어올라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은 그것을 쥐어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