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그 온 드라군3 설정집에 있는 드래그 온 드라군1.3 소설 번역입니다.
시간열은 DOD3의 A분기 > YOUNG GANGAN에 연재된 만화 '드래그 온 드라군 죽음에 이르는 적색'에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무인판 드래그 온 드라군과는 설정이 조금 다릅니다.
A_0010 진홍의 용(3/3)
광룡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광기를 품은 쌍안이 카임을 향한다. 타오르는 듯한 안광이 검은 용의 것과 겹쳐보였다.
이거다. 이 눈. 그 날과 같은 흉악한 빛을 감은 눈. 떨어뜨렸던 검을 주웠다. 아직 왼손가락은 조금이나마 움직인다. 감각없는 오른손으로 자루를 감쌌다. 힘없는 다리로 지면을 박차고 검을 들어올렸다.
5년전 그 날부터 검은 용을 쓰러뜨리는 것만 생각해왔다. 다음 만나는 날은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용을 봤다는 소문을 들으면 얼마나 먼 곳이라 하더라도 찾아갔다. 용족이 꺼린다고 하는 것은 뭔지, 용족의 약점은 어디인지 조사했다. 속설이나 동화 속 이야기조차 긁어모아 용을 죽일 방법만을 생각했다.
이윽고 병화가 퍼져 용을 쫓을 때가 아니게 되었지만 그래도 잊지 못했다. 제국병을 베어죽이며 기분을 풀어보려해도 용족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내려치는 발톱을 피해 품 속에 뛰어들었다. 등에는 딱딱한 비늘이 빈틈없이 감싸져있었지만 배라면 검을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심한 비린내가 났다. 피와 살의 냄새라는건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군. 더러운 색으로 보일 법하다. 이 용은 눈에 닿는 생물을 모조리 먹어 치운 것이 틀림없다. 그게 포식대상이 되는 상대이든 같은 종이든.
위험이 극에 달한 상황이지만 웃음이 나왔다. 제국군을 모조리 베어넘긴 자신과 이 용은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용이 용을 죽이고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 확실히 쓸데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뭐가 나쁘지? 죽인다는 것은 살아남는다는 것이 아닌가?
지금, 살아남는건 어느 쪽일까?
용의 목을 노리고 검을 세웠다. 그러나 표적은 벗어났다. 용이 크게 상체를 뒤집은 것이다.
비틀린 칼끝이 갈 곳을 잃기 직전, 가로로 길게 갈라진 비늘이 눈에 들어왔다. 옛 상처일지도 모른다. 순간적으로 검을 찔러넣었다. 날카롭게 부르짖는 소리. 화염이 눈 날리는 하늘을 태웠다.
다시 한번. 같은 장소를 검으로 도려냈다.
다음 순간 신체가 공중에 떴다. 용이 날뛰고 있다. 나가 떨어져버렸다는 걸 눈치챈 순간 충격이 왔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아픔도 열도 아닌 것이 폐를 조여온다.
빨리. 빨리 일어나서 검을. 늦으면 목숨을 잃는다. 빨리.
미친 용은 발톱과 날개, 꼬리를 쳐들고 날뛰었다. 다가갈때마다 나가 떨어져, 내팽게쳐지고는 다시 일어나, 그럼에도 카임은 몇 번이고 검을 찔러넣었다.
어느샌가 아픔조차 약해져, 걷고 있는건지 공중에 떠있는지조차 구별이 되지 않았다.
불시에 포효가 멈췄다.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용의 거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숨을 끊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다만 피냄새를 흩뿌리며 용은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믿기지 않는구나. 인간 따위가 용족을, 그것도 광룡을 쓰러뜨리다니."
진용의 용이 가까이에 있었다. 맞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지. 나는…….
지면에 발이 박혔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어깨가 크게 기울어졌다. 순간적으로 검으로 몸을 받치고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피로 물든 오른손에는 손가락이 없었다. 그 오른 손을 감싸고 있는 왼손가락도 새까맣게 변색해있었다.
알고 있었다. 추위로 손가락 끝의 감각을 잃었을 때부터. 아마 발도 비슷한 모양이 되어있을 것이다.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이 꺾였다. 그래도 일어나려고 한 순간 기침이 나왔다. 척추뼈가 비명을 질렀다. 발근처의 눈에 여기저기 붉은 꽃이 피어난다.
"이, 정도로……."
나는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
"살고싶나?"
"당연…하지……."
생명을 가진 자는 모두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생을 바라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 생명은 무엇을 위해있지?
"드래곤……."
검을 지팡이 대신으로 일어났다.
"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손가락이 떨어져나간 손으로 검자루를 누르며 움직이지 않는 오른쪽 다리를 끌었다. 모든 것이, 쓰러지면 끝이다.
"그렇게까지 살려고 하는건가. 인간."
그 목소리는 의아함과 놀람이 반씩 섞여있었다.
어쩌면 터무니없이 긴 세월을 산다는 용족은 잊어버리고 있던건지도 모른다. 그 길고 긴 수명 때문에, 살고 싶다는 당연한 욕구를.
"어째서지?"
"알게뭐냐. 나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다."
용의 쌍안에서 무언가 신비로운 색을 봤다고 생각했다. 착각인가? 분명 그럴 것이다. 아까부터 시야가 어둡다. 시력이 급속도로 저하되고 있었다.
"그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 두번다시 검을 잡을 수 없겠지. 그럼에도 생을 원하나?"
"아아, 그럼에도……."
척추뼈가 불규칙하게 떨렸다. 이제는 아픔조차 느끼지 않는다.
"나는……살아남겠어!"
진용의 용이 천천히 목을 들어올렸다. 그 목 근처에는 할퀸 흔적이 있었다. 광룡이 발톱으로 만든 상처다.
주위의 눈을 붉게 물들일 정도로 흐르던 핏방울들이 어느샌가 멈추고, 상처도 거의 나아가고 있었다. 경이적인 생명력이다. 한 조각만큼이어도 좋으니 그것이 자신의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절실히 바란다.
"그렇다면 살 방법을 주지."
무엇을 생각한건지 진용의 용이 획 목을 기울였다. 나아가던 상처가 찢어져 다시 피가 흘러 떨어진다.
"이 피는 너의 생명을 늘리고 그 사지를 재생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뛰어넘는 강함과 힘을 준다. 그러나 동시에 몸을 갉아먹는 저주가 된다. 그래도 좋은가?"
바로 끄덕였다. 물어볼 필요도 없다. 저주든 뭐든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쓰러지려는 스스로를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용의 목에서 가슴을 타고 흐르는 피를 향한다. 그 몸 색과 같은 붉은 방울에 입을 맞추었다.
화염을 마신 느낌이었다. 용의 피는 몸 안에서 한 순간에 힘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저주였다.
비명도 포효도 아닌 소리가 목에서 분출되었다. 시야에는 비색의 눈이 흩날린다.
그래도, 살 수 있다.
몸을 태우는 고통과 함께 힘이 솟는 것이 느껴졌다. 이 힘. 용의 피가 가져오는 힘. 사람의 몸으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힘으로 다시 검을 잡을 수 있다…….
카임은 그저 그 기쁨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차가운 돌벽에 둘러쌓인 방이었다.
곰팡이인지 먼지인지 모를 불쾌한 냄새와 축축하고 차가운 습기가 가득 차있었다. 밖에서의 소음이 아닌 것 같은,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작은 소리가 방의 구석에서 들려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벌레같은 것이겠지.
창문은 없었다. 딱 하나 있는 문에는 쇠창살이 박혀있었다. 그것만으로 이 방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명백했다. 벽에 쇠사슬로 묶여있는 소녀를 볼 것도 없었다.
어딘가 신기한 소녀였다. 머리색, 눈색은 결코 희귀하지 않았지만 그 복장은 남들 눈에 특이하게 보일 것이 틀림없었다.
반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포로가 된 몸을 한탄하지도 않고, 소녀는 단지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에 든 양초의 작을 불빛만으로는 소녀의 표정이나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용의 힘'이 손에 들어온겁니다. 우리가 원하고도 원하던 힘이."
신관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작은 방 안에 울려퍼졌다. 흰 머리가 섞인 금발을 빈번히 만지작거리는건 흥분을 숨기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차림새로 보아 그는 그 연령치고는 낮은 지위에 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양 눈에는 날카로운 빛이 있다. 노경에 들어서도 그는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하지만, 벨드레님"
소녀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제대로 되는 일은 없을걸요?"
그러나 남자의 귀에 소녀의 말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남자는 과장스럽게 양 손을 높이 들고 계속해서 희열의 말을 잇고 있었다.
"이걸로 연합군의 승리는 약속된거나 마찬가지. 신관장님도 꽤나 기뻐하시겠지. 그리고, 잘하면 나도……."
소녀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어서 그 입에서 작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귀에도 닿지 못했다.
